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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기사 모음

中과 기술 격차 3년, 누가 K 자율주행 발목 잡나 [뛰는 차이나, 기로의 K산업]
이름
한국자동차안전학회
날짜
2025.05.21 03:05
조회수
97

[한국일보]

中과 기술 격차 3년, 누가 K 자율주행 발목 잡나 [뛰는 차이나, 기로의 K산업]

 

차량 구석구석에 카메라 10개, 라이다(레이저를 통한 인식 장치) 8개, 레이다 3개를 설치한 특별한 차량에 탑승한 건 8일. 분명 KG모빌리티의 코란도 이모션(E100)인데 '서울자율차'란 이름을 달고 있다. 현재 평일 심야 시간(오후 11시~오전 5시) 국내에서 도로 사정이 가장 복잡하다는 서울 강남구 일대를 시범 운행 중인 바로 그 자율주행 택시(로보택시)다. 트렁크엔 국내 자율주행 기술 기업 SWM이 만든 슈퍼 컴퓨팅 시스템(AP-500)이 실려있다. 이 차량의 두뇌 역할을 한다.

운전석엔 안전 요원이 탔다. 스티어링 휠(운전대)과 페달에선 손과 발을 완전히 뗀 운전자가 목적지를 누르니 중앙 디스플레이에선 "자율주행을 시작합니다"란 소리가 나왔다. 20분 가까이 달리는 동안 차량은 신중했다. 사람이 운전대를 잡았다면 분명 경적을 울리거나 앞 차량을 추월하려고 속도를 높였을 상황에도 좀처럼 흥분하는 법이 없다. SWM의 전략은 '안전이 우선'이다.

어린이보호구역에 들어서기 직전엔 영락없이 "수동 주행으로 전환한다"란 안내가 나온다. 운전대를 잡고 페달에 발을 올리란 뜻이다. 어린이(노인)보호구역과 공사 구간 등에선 현행법에 따라 자율주행이 금지돼 있다. 인도 위 한 보행자가 택시를 잡으려는 듯 갑자기 차도 쪽으로 몸을 내밀자 알아서 속도를 줄였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힘든 한밤중 강남에서 시민들의 발이 돼 주는 서울자율차 운행 대수는 현재 3대다.
 

자율주행 운행 허가 400여 대 불과

SWM이 개발한 소프트웨어가 탑재된 자율주행 택시(로보택시) 내부. 자율주행 시 도로 상황이 실시간으로 차량 내부 중앙 디스플레이에 표시되고 있다. 안양=정다빈 기자

SWM이 개발한 소프트웨어가 탑재된 자율주행 택시(로보택시) 내부. 자율주행 시 도로 상황이 실시간으로 차량 내부 중앙 디스플레이에 표시되고 있다. 안양=정다빈 기자

각종 안전사고 우려와 규제의 벽으로 더디게 오나 싶던 자율주행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미국과 중국이 로보택시 서비스의 실질적 상용화에 성공하는 등 미래 모빌리티 시장 주도권 확보를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여온 결과다. 한국도 자동차 제조사는 물론 정보기술(IT) 기업, 스타트업들이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을 위해 자율주행 기술 확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2032년 글로벌 자율주행 시장 규모가 3,200조 원(약 2조3,000억 달러)에 이를 것이란 전망까지 있다.

현재 가장 앞선 건 미국 구글 산하의 웨이모다. 2018년 세계에서 가장 빨리 로보택시 서비스 유료화에 나선 웨이모의 누적 운행 거리는 약 4,000만km에 달한다. '완전자율주행(FSD)' 기술을 앞세우는 미국 테슬라도 만만치 않다. 10여 년 전부터 자율주행 기술 로드맵을 마련한 중국 역시 바이두를 중심으로 수억㎞에 달하는 주행 데이터를 쌓으며 다양한 자율주행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그래픽=송정근 기자
 

그래픽=송정근 기자

그래픽=송정근 기자

하지만 한국은 '절반의 자율주행'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상용화 분야에서 아직 뚜렷한 선두 기술과 기업은 없다. 심야 등 제한된 시간에 특정 구간에서 시범 운행하고 있을 뿐이다. 그마저도 안전 요원 역할의 운전자가 꼭 타야 한다. 2024년 기준 전국에서 471대만 임시 운행 허가를 받았다.

현대차그룹만 해도 2020년 사람이 사실상 운전에 관여하지 않는 '레벨4' 이상의 기술 개발을 목표로 미국 자율주행차 기업 앱티브와 합작법인 '모셔널'을 만들고 자율주행 기업 '포티투닷'을 인수했지만 현재까지 눈에 띄는 성과가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지난해 10월 미 웨이모에 아이오닉5 공급을 확정하는 등 글로벌 모빌리티 기업들과 협력의 강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경쟁력을 높이려 한다.

오히려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자율주행 선두 기술을 만들어 상용화하려는 경쟁이 치열하다. 카메라 등 각종 하드웨어 기술은 인공지능(AI) 같은 첨단 소프트웨어가 어우러져야 실제 현장에서 실현 가능성이 높아진다. 소프트웨어 역량이 우수한 기업들이 미중과의 기술 격차를 좁히려고 자율주행 분야에 뛰어드는 배경이다. 김기혁 SWM 대표는 "자율주행 기술 수준에서 미국을 10단계로 본다면 중국이 7~8, 한국은 6 정도 왔다"며 "격차는 확실히 있지만 기술력과 기업과 정부 의지만 놓고 보면 중국에 크게 뒤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자율주행 분야에서 중국과 기술 격차가 3년 정도 벌어져 있다고 본다.
 

"전기차처럼 보조금 확대" 목소리도

14일 경기 안양시 동안구청에서 탑승한 자율주행 버스 '주야로' 내부. 자율주행 전문 기업 오토노머스에이투지의 기술이 탑재됐다. 안양= 강예진 기자

14일 경기 안양시 동안구청에서 탑승한 자율주행 버스 '주야로' 내부. 자율주행 전문 기업 오토노머스에이투지의 기술이 탑재됐다. 안양= 강예진 기자

또 다른 자율주행 스타트업 오토노머스에이투지는 '로보셔틀'을 앞세워 기술 개발에 한창이다. 이 회사는 현재 서울시 새벽동행 자율주행버스와 안양시 자율주행버스 '주야로' 등 노선형 자율주행 버스와 인천국제공항 자율주행 셔틀버스 등을 운영 중이다. 최근엔 운전석이 아예 없는 레벨4 자율주행 셔틀도 만들고 있다. 올 하반기 상용화가 목표다.

14일 안양시 동안구청에서 타 본 주야로는 18인승 버스로 차선 유지, 자동 제동, 정류장 정차, 교통 신호 인식 등 이 회사의 자율주행 기술이 적용됐다. 세 대의 버스가 월요일을 뺀 평일 낮(오전 10시~오후 5시)과 야간(자정~오전 2시)에 버스 노선이 비교적 적은 대중교통 사각지대를 중심으로 11개 정류장(야간은 22개 다른 노선 정류장)을 오간다. 시범 운행을 시작한 지난해 4월 이후 1년 가까이 1만2,000명이 탔다. 특히 밤 노선은 경비나 청소 등 야간 근무를 마친 근로자들의 발이 돼 줬다는 평가다.
 

자율주행 버스 '주야로'가 운행되고 있는 모습. 안양=강예진 기자

자율주행 버스 '주야로'가 운행되고 있는 모습. 안양=강예진 기자
 

그래픽=송정근 기자

그래픽=송정근 기자

정부도 일찌감치 자율주행을 미래 자동차 산업을 이끌 기술로 주목하고 환경 마련에 나섰다. 최근 고속도로 44개 노선 전 구간 및 19개 일반도로 등 5,367㎞로 자율주행 시범운행지구 범위를 넓혔다. 하지만 보조금 지급과 적극적 수요처 발굴 등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지원책 마련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크다. 유민상 오토노머스에이투지 최고전략책임자(CSO)는 "자율주행차는 대중의 이동권 향상에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며 "정부가 전기차 보조금 같은 정책을 과감하게 적용할 경우 국내 시장 규모도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도로 데이터를 더 쌓고, 안전에 대한 소비자들의 걱정을 덜고, 사고 시 책임 소재를 확실히 하는 등 자율주행 산업이 맞닥뜨린 숙제도 많다. 특히 미중에 비해 낮은 사회적 수용성은 자율주행 산업 확장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다. 광역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공공 분야에서 선제적으로 자율주행 시범 차량 운행 대수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성용 한국자동차모빌리티안전학회 회장(중부대 교수)은 "지자체가 청소차, 응급차 등 공공재 버스를 시작으로 더 많은 자율주행 차량 확산에 힘을 보태겠다는 의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자율주행차는 전기전자, 기계, AI 학습 등이 망라된 종합 산업인 만큼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